대학생으로서의 삶은 이상과 현실의 방향을 정렬하는 과정이었다.
본래 내가 직업으로 원했던 것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의 길이었다. 하지만 세 번의 간절한 도전에도 그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고, 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당시 나의 논리는 간단했다. 인간의 생명 그 자체를 직접 다루지 못한다면, 인간 생명이 살아가는 터전인 환경에 기여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회환경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타협으로서의 선택에 대한 아쉬움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새내기 시절엔 정이 가지 않는 학교 수업을 피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깃들어 있는 도서관과 즉각적인 도파민을 충족시켜 주는 술자리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한 해 동안의 삶을 흘려보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2학기 연속 학사 경고 기록이었다.
이 권태로운 흐름에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20달 간의 군 복무와 그 직후 2달 간의 미국 여행이었다. 군 생활은 억압과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미국에서의 경험은 자유와 연결 속에서 시야를 넓힐 기회를 제공했다.
깨달음을 향한 여정을 마칠 무렵, 복학하면 어떤 목표를 추구할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환경이라는 거시적인 틀을 보호하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삶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는 인류의 삶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도구를 만드는 삶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과 함께, 나는 새로운 다짐으로 2학년 과정에 복학했다. 1학년 때 학점 관리에 소홀했던 탓에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공학 등 다른 학과로의 전과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하지만 학과 내에서 ‘SW융합전공’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2학년부터는 원하는 과목들을 수강하며 학부를 다닐 수 있었다. 이를 통해 C, Java, Python 같은 기초 프로그래밍 언어로부터 인공지능, 컴퓨터비전, 디지털영상처리 등의 심화 분야까지 어우르는 다양한 CS 과목들을 폭넓게 수강했고, 더 나아가 스마트 시티 혹은 대기 모델링과 같이 기존의 전공과 AI를 융합하는 다양한 응용 분야를 탐구했다. 기술 분야의 수업뿐만 아니라 법학,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등의 교양 과목 수강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했으며, 교육 시스템이 정해둔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지 않고 언어, 수학, 과학, 기술, 경제, 인간, 사회, 정치, 역사, 사업, 문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글을 읽고 쓰며 세상을 다각도로 이해하고 표현해왔다. 또한 창업 및 투자 활동을 통해 실물 경제와 시장의 역동성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탐구를 거치며, 나는 두 가지 정체성을 함께 키워왔다. 비트(Bit) 단위로 세상을 읽고 쓰는 작가와, 원자(Atom) 단위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빌더다.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사유하며, 그 해답을 제품으로 제시한다.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꼬리를 무는 우로보로스처럼 하나의 자아를 이루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마지막 학기부터는 자연어처리(NLP) 연구실에서 학부 연구생으로 활동하며 연구자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제 나의 시선은 인공일반지능(AGI)을 향하고 있다. 이 기술이 가진 의미를 탐구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하며, 인간 지성의 한계를 확장하는 동시에 그 혜택이 인류 전체에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 이것이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